분류 전체보기 (99) 썸네일형 리스트형 밤이 남긴 자리 밤이 남긴 자리제9장 | 밤의 끝을 걷다글 │ 현원석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질 무렵,도시는 아주 미세하게 숨을 고른다.완전히 잠들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깨어나지도 않은 시간.나는 어느새 이 애매한 경계의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편의점 근무를 마치고 재고를 확인한 뒤,불을 끄기 전 잠시 밖으로 나왔다.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도로 위에는 몇 대의 차만이 지나가고 있었고,가로등은 아직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하늘은 밤의 색을 조금씩 벗고 있었지만아침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었다.그래서일까,이 시간은 늘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서도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목적지는 없었다.그저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이 거리는 수없이 지나온 길이었지만언제나 운전석에 앉아신호와 시.. 밤이 남긴 자리 밤이 남긴 자리글 │ 현원석제8장젊은 날의 그림자나는 계산대에 서서진열대 사이를 천천히 정리하고 있었다.밤은 늘 비슷한 얼굴로 흘러가지만,어느 순간에는 불쑥전혀 다른 시간을 데려온다.그날 새벽도 그랬다.낡은 가방을 멘 청년 하나가후드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문을 열고 들어왔다.매장 안을 한 바퀴 돌며상품들을 바라보는 시선이고르지 않았다.무언가를 고르는 눈이라기보다는무언가를 피하고 있는 눈에 가까웠다.청년은 컵라면 하나와삼각김밥을 집어 들고계산대 앞에 섰다.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봉투…괜찮으시면…”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봉투를 건넸다.그리고 나도 모르게이런 말을 건넸다.“오늘도 일하셨어요?”청년은 잠시 놀란 얼굴로나를 바라보다가고개를 저었다.“아니요.면접 보고 오는 길이에요.”“늦었네.. 밤이 남긴 자리 밤이 남긴 자리 6편부제: 말해도 괜찮은 밤: 편의점이 건넨 조용한 위로 글 | 현원석편의점의 문은 매일 똑같은 소리를 내며 열고 닫히지. 하지만 문을 통과해 들어서는 사람마다 그 소리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져. 이제 난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어. 밤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말이야.그날 밤, 아직은 어둑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한 중년의 남자가 들어섰어. 말끔하지만 피곤함이 묻어나는 셔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구겨진 재킷, 그리고 손에 든 낡은 서류 봉투 하나. 그의 모습에서 나는 하루의 고단함과 짊어진 삶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어. 그는 한참을 진열대 앞을 서성이다 캔맥주 하나와 봉지 라면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지. "봉투 필요하세요?" 내가 묻자 .. 가브리엘 베드로의 삶 제목: 가브리엘 베드로의 삶가제:""하느님의 뜻을 듣고,그 뜻 위에 자신의 삶을 반석처럼 세우는 사람”" 글쓴이:현 영욱동이 트기 전, 세상은 여전히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나는 작은 희망의 파동처럼 희미한 푸른빛이 동쪽 하늘을 서서히 물들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어.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고요한 전조처럼 말이야. 그 푸르스름한 여명 속에서, 가브리엘 베드로의 그림자가 오래된 성당의 돌계단을 조용히 밟아 올라섰지.스물다섯. 타인들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며 활기찬 시작을 꿈꿀 나이에, 그는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뒤로하고 이곳, 언제나 그의 영혼의 안식처.. 밤이 남긴 자리 아내와 나누는 일상아내는 가끔 말한다.나의 등을 보고 있을 때면, 자기 마음속에도 잔잔한 파문이 일어난다고, 나에 넓고 단단한 등, 한때는 세상을 다 짊어진 듯 서두르던 그 등이, 이제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를 가졌다는 것이 아내를 울컥하게 한다고, 마치 거친 폭풍우를 겪어낸 나무가 비로소 제 가지를 펼치듯, 나의 등은 그렇게 성숙해져 가고있다고 말이다.밤 열시, 편의점 간판의 불이 켜지면 나는 집을 나서. 그리고 아내는 귀가를 해 혼자가되지,하지만 이 '혼자'라는 말이 외롭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각자의 밤을 채워가고 있다는 의미일 뿐. 나는 계산대를 닦으며 아내의 손길이 스쳤을 자리를 가만히 느껴봐. 아내와나는 언제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 자리에 자신의 흔적.. 밤이 남긴 자리 밤이 남긴 자리글 | 현원석제4장: 낮의 그림자, 밤의 속삭임새벽 세 시, 도시의 활기마저 숨죽이는 시간. 편의점의 공기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 속으로 차분히 가라앉는다. 35년간 밤낮없이 물건을 싣고 나르던 트럭 소리, 쉴 새 없이 뽑아대던 송장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정적이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나면, 오롯이 자신과의 대화만이 선명해지는 그런 때가 찾아오죠. 나는 계산대에 기대어 따뜻한 믹스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음미했다. 입안 가득 번지는 깊고 씁쓸한 여운은, 문득 과거 사무실에서 마시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곳엔 더 이상 물건을 싣고 나르는 소리도, 끊임없이 뽑아대는 송장 소리도 없다. 오직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어쩌면 나.. 싱그러운 아침 싱그러운 아침, 캠핑장의 풍경밤을 접은 텐트들 사이로자갈 위에 남은 어제의 웃음이아직 식지 않은 채 숨을 고른다.샤워기 아래서 흘려보낸잠기지 않던 피로와모닥불 냄새까지 씻겨낸 뒤,문을 열자아침은 조용히 서 있었다.솔잎 사이로 스미는 옅은 빛,전선 위에 걸린 하늘은아직 하루를 서두르지 않고연한 숨결로 캠핑장을 덮는다.차창에 맺힌 밤의 흔적들,차분히 주차된 시간들,바람은 아무 말 없이나무와 나 사이를 오간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더없이 충만한 이 순간,오늘은천천히 시작해도 괜찮다고아침이 먼저 고개를 끄덕인다. 힘들어 하는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 아빠가 삶을 살아오며 느낀 건,삶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굴곡이 많다는 거야.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롤러코스터처럼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더라.내려가는 순간이 있어야다시 오를 수 있는 힘도 생기고,늘 위로만 향하는 길은어쩌면 삶을 나태함 속에 머물게 할지도 모르겠더구나.그래서 그런 길은조금 삶답지 않게 느껴지기도 해.혹시 지금 네가조금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그건 실패가 아니라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속도가 느려져도 괜찮고,잠깐 멈춰 서 있어도 괜찮아.아빠는 네가 어떤 자리에 있든늘 너를 믿는다.잘해내고 있을 때도,마음이 흔들릴 때도너는 언제나 아빠에게변함없이 소중한 아들이니까.지금의 어려움은너를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조금 더 단단해지게 하는 시간..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현영욱 올 한 해도 제 티스토리를 찾아와부족한 글들을 조용히 읽어주시고공감해 주신 모든 구독자·독자 여러분께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매일같이 오가는 화려한 말은 아니었지만,여러분이 남겨주신 발걸음 하나하나가글을 계속 써 내려갈 수 있는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다가오는 2026년 새해에는독자님들 한 분 한 분의 가정에행복과 기쁨이 늘 함께하시고,건강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따뜻한 날들이 이어지길 바랍니다.앞으로도 삶의 조각 같은 이야기들을담백하게,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가겠습니다.함께해 주셔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2025년 마무리 잘 하시고,희망 가득한 2026년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밤이 남긴 자리 밤이 남긴 자리글 │ 현원석제3장밤이 머무는 사람들밤 열한 시가 넘으면도시는 스스로 숨을 낮춘다.경적은 사라지고,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진다.마치 낮 동안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 사람처럼,도시는 밤이 되면 침묵을 선택한다.그 시간, 편의점은도시가 마지막으로 남겨둔 방 같다.불은 꺼지지 않고,누군가를 위해 문은 항상 열려 있다.그는 계산대 뒤에 서서유리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밖은 어둡고, 안은 밝았다.그 경계는 언제나 명확했지만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사람의 자리는늘 모호했다.첫 손님은 쿠팡택배 기사였다.야간 배송을 막 끝낸 듯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캔커피 두 개와 삼각김밥을 집어 들고계산대 앞에 섰다.“오늘도 야간이세요?”기사는 물건을 내려놓으며별 뜻 없는 인사처럼 말했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