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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영욱 개인생각&글

밤이 남긴 자리

밤이 남긴 자리
글 │ 현원석
제3장
밤이 머무는 사람들
밤 열한 시가 넘으면
도시는 스스로 숨을 낮춘다.
경적은 사라지고,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진다.
마치 낮 동안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 사람처럼,
도시는 밤이 되면 침묵을 선택한다.
그 시간, 편의점은
도시가 마지막으로 남겨둔 방 같다.
불은 꺼지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문은 항상 열려 있다.
그는 계산대 뒤에 서서
유리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밖은 어둡고, 안은 밝았다.
그 경계는 언제나 명확했지만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사람의 자리는
늘 모호했다.
첫 손님은 쿠팡택배 기사였다.
야간 배송을 막 끝낸 듯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캔커피 두 개와 삼각김밥을 집어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오늘도 야간이세요?”
기사는 물건을 내려놓으며
별 뜻 없는 인사처럼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단하시네.”
그 말은 칭찬도, 위로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밤을 건너는 사람끼리
서로를 확인하는 인사였다.
그는 짧게 웃었다.
기사는 봉투를 들며 덧붙였다.
“불 켜져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 시간엔 갈 데가 별로 없거든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말은 오래 남았다.
이곳이 누군가의 ‘갈 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문이 닫히고
편의점은 다시 고요해졌다.
냉장고의 웅웅거림,
형광등의 미세한 떨림.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밤이 되자 또렷해졌다.
새벽 한 시쯤,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젖은 머리에서
비 냄새가 함께 흘러들어왔다.
컵라면 하나를 집어 들고
전자레인지 앞에 섰다.
“여기서 먹어도 돼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편하신 대로요.”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아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을 쥔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는 괜히 냉장고를 정리하며
힐끗 시선을 보냈다.
라면을 다 먹은 그녀는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섰다.
계산대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는 그 말이
라면에 대한 인사인지,
잠시 머물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한 인사인지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였다.
새벽 두 시가 가까워질수록
손님은 뜸해졌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잠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루를 마음속에서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교복 위에 후드티를 걸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는 음료를 고르며
계속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아이는 갑자기 물었다.
“아저씨는
왜 밤에 일해요?”
질문은 가벼웠지만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는 많았고,
그중 어느 것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밤이…
조용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밤이 더 솔직한 것 같아요.”
아이는 웃으며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밤이 더 솔직하다.
그 말은
그의 삶에도 어울리는 말이었다.
낮에는 숨기던 것들이
밤에는 고개를 들었다.
편의점의 불은
그날도 밤새 켜져 있었다.
그는 계산대 뒤에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온기를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실패한 사람이라 부르지 않았다.
다만,
조금 다른 시간대에 서 있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밤은 그렇게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건네고 있었다.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