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브리엘 베드로의 삶
가제:""하느님의 뜻을 듣고,
그 뜻 위에 자신의 삶을 반석처럼 세우는 사람”"
글쓴이:현 영욱
동이 트기 전, 세상은 여전히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나는 작은 희망의 파동처럼 희미한 푸른빛이 동쪽 하늘을 서서히 물들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어.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고요한 전조처럼 말이야. 그 푸르스름한 여명 속에서, 가브리엘 베드로의 그림자가 오래된 성당의 돌계단을 조용히 밟아 올라섰지.
스물다섯. 타인들이 사회라는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며 활기찬 시작을 꿈꿀 나이에, 그는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뒤로하고 이곳, 언제나 그의 영혼의 안식처였던 성당의 문을 열었어. 삐걱이는 문소리조차 이 거대한 침묵 앞에서는 그저 작은 파문처럼 느껴질 뿐이었지.
성당 안은 여전히 어두웠어. 제단 위, 가늘게 타오르는 몇 개의 촛불만이 희미한 주황빛을 던지고 있었고, 차가운 새벽 공기와 어우러진 오래된 나무와 촛농의 향기가 그의 콧날을 간지럽히는 듯했어.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스며드는 여명은 아직 그 찬란한 색을 발하지 못하고, 오색찬란했던 유리들은 잿빛 그림자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었지.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언제나 그랬듯, 세상의 모든 소음과 번뇌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오직 깊은 평온만이 그를 감싸 안는다는 것을 나는 그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어.
베드로는 익숙한 길을 따라 제대 옆, 온화한 성모 마리아상 앞으로 향했어. 희미한 불빛 아래 고요히 서 있는 마리아상. 그녀의 눈빛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감싸 안는 듯 자비로웠고, 살짝 고개 숙인 얼굴에는 영원한 사랑과 연민이 깃들어 있는 듯했지. 그는 마리아상 앞에 무릎을 꿇었어. 차가운 돌바닥이 무릎에 닿는 감각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맑게 일깨우는 듯했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쥐고 고개를 숙인 그의 어깨가 잔잔하게 떨려왔어. 대학 졸업장과 함께 찾아온 뿌듯함, 하지만 동시에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세례명 '가브리엘 베드로'로서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밤마다 그를 괴롭혔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어. 하지만 이 순간, 그는 마리아의 품 안에서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했지.
그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간절한 기도를 입술에서 흘려보냈어.
"하느님, 세상의 혼탁한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주소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주저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그리고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을 용기를 허락하소서."
나는 그가 마치 막시밀리아노 콜베 성인처럼 타인의 아픔을 제 한 몸으로 감당하려는 뜨거운 사랑을, 또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을 잃지 않도록 살아가기를 기도하는 것을 지켜봤어. 그의 기도 속에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빛과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가득 담겨 있었지.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따뜻한 불꽃으로 가득 차 오르는 듯했어. 마리아의 온화한 미소 앞에서, 그는 다시금 확신을 얻는 듯 보였지. '사람이 자기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옆에 서 주는 사람'이 되리라. 그의 스물다섯 인생의 새로운 장이, 바로 이 새벽,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막이 오르고 있는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어.
고개를 숙인 채 무릎 꿇은 베드로의 눈가에 뜨거운 기운이 스치자, 그는 고개를 들었어.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청년의 얼굴에는 밤샘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마리아상을 향한 그의 시선은 더없이 진실하고 순수했지. 조용하고도 힘 있는 목소리로, 그는 마리아에게 속삭이듯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어.
"어머니, 마리아님..."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새벽 공기 속을 가르며 메아리 없이 성당의 벽과 기둥에 흡수되는 듯했지만, 그 울림은 이내 온 성당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어.
"제가 무엇을 보고 걸어가야 할까요? 스물다섯, 졸업장을 손에 쥐었지만, 세상은 너무나 넓고, 동시에 너무나 복잡합니다. 저는 무엇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나아가야 할지... 이 무지한 아들에게 가르쳐 주소서."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숨을 내쉬었어. 나는 그가 수많은 사람들, 셀 수 없는 길들 속에서, 자신의 발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그는 마음속에 희미하게 품고 있는 길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어.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며,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삶... 그는 그런 삶을 꿈꿨지만, 현실이라는 거친 파도 앞에서, 믿음의 길은 안개 속에 갇힌 듯 혼란스러운 듯했어. 이 안개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줄 등대처럼, 그는 마리아상 앞에서 다시금 기도했지.
"어머니... 어떤 길이... 저에게 바른 길일까요? 제가 당신의 아들, 당신의 종으로서 이 세상에 서야 할 바른 자리는 어디인지, 제게 어떤 지표를 내려주소서. 수많은 유혹과 달콤한 속삭임 속에서, 제가 진정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 주소서."
나는 베드로가 성당의 묵직한 오크 문을 등지고 산비탈로 난 숲길로 걸어갈 때, 새벽빛을 머금은 촉촉한 흙길이 그의 발걸음 소리마저 삼켜버리는 듯 고요하다는 것을 보았어. 새벽녘 내린 이슬방울이 나뭇잎마다 영롱하게 맺히며 숲은 특유의 청량하면서도 신비로운 향기를 내뿜고 있었지. 도심의 탁한 공기 속에서 숨 쉬던 폐가 청량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듯하다고 그는 느끼는 듯했어.
나는 그가 폐부 깊숙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갈증에 허덕이던 영혼이 시원한 샘물을 마시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을 지켜봤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머릿속을 맴돌던 복잡한 생각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하는 듯했지.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이 지난 수년간 배우고 고민하고 답습해왔던 모든 것들을 꺼내어 조심스레 뒤집어보며 길을 걸었어.
교과서에서 배운 신학적 교리, 수많은 성인들의 위대한 행적, 존경하는 사제들의 삶의 태도… 나는 그가 그것들을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자신의 가슴과 영혼으로 "살아내는" 방법을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프란치스코 성인이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라 부르며 거리에서 복음을 전했듯, 그는 교리가 삶 속에서 어떻게 숨 쉬고 움직일 수 있는지 묻고 답하며 길을 걷고 있었지.
새벽 숲의 고요함 속에서, 베드로는 깊이 생각하는 듯했어. ‘죄인에 대한 깊은 자비’, ‘사랑은 창조적인 힘’, ‘약자를 택한 용기’… 이 위대한 말들이 과연 책상 위에서만 빛나는 것일까? 실제 삶 속에서, 거칠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이 가치들은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 그는 문제에 정답을 외우는 것을 넘어, 정답을 살아내는 방법을 알고 싶어 책과 현실을 오가며 배우고 있는 듯 보였어.
머튼 신부가 침묵 속에서 진리를 찾았듯, 베드로 또한 숲의 침묵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길은 다른가? 만약 다르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나는 그의 눈빛에서 이러한 고민의 깊이를 읽을 수 있었어.
“내가 배운 정의와 사랑의 가치가 때로는 세상과 충돌할 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의 굳게 다문 입술은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
“판단보다 자비, 말보다 행동… 그 수많은 성직자들의 삶의 정신이 지금 이 순간, 25살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나는 그의 표정에서 이 질문이 단순한 궁금증이 아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물음임을 알 수 있었어.
나뭇가지 사이로 새벽 햇살이 조금씩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뭇잎마다 맺힌 이슬방울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며 빛을 뿌렸어.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숲을 생기로 채웠고,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존재의 삶과 죽음, 성장과 변화 속에서 베드로는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 같았지. 바로 ‘자연스러움’과 ‘조화’였어.
나는 그가 어쩌면 바른 길이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 모든 존재와 조화를 이루며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깨닫는 듯하다고 느꼈어. ‘보는 것’은 특정 목표가 아니라, 눈앞의 모든 생명, 고통받는 존재들의 얼굴이고, ‘바른 길’은 그들을 향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길이라는 것을 조금씩, 천천히 습득해가는 듯 보였어.
폐부 깊이 들이마신 숲의 공기처럼, 그의 마음속에도 명징한 깨달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어. 완벽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아가야 할 방향의 큰 줄기는 잡은 듯, 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볼 수 있었지. 숲은 그렇게, 한 젊은 영혼의 고뇌를 위로하고 그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했어.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마음속 깨달음은 묵직하게 자리한 채 베드로는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 숲길은 여전히 고요했고, 햇살은 이제 제법 숲속 깊이 스며들어 나뭇가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지. 그때였어. 저만치 덤불 속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어.
어미 들고양이가 막 태어난 듯 작은 새끼를 입에 물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어. 털이 채 마르지도 않은 듯한 작은 생명체는 어미의 입에 물려 축 늘어져 있었지만, 어미는 놀랍도록 섬세한 움직임으로 새끼를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있었지. 한 마리를 숲의 더 깊고 울창한 넝쿨 속으로 옮겨 놓고는, 다시 총총걸음으로 돌아와 다른 새끼를 물고는, 또다시 같은 방향으로 사라졌어.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며, 어미는 자신의 모든 새끼들을 넝쿨 속 깊숙한 곳으로 옮겨 놓았지.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꼼짝 않고 서서 그 모습을 바라봤어. 한 마리, 한 마리… 나약한 새끼들을 옮기는 어미의 등은 긴장과 책임감으로 가득 차 보였어. 그리고 문득, 마리아상 앞에서 그가 던졌던 물음이 메아리처럼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듯했어. '무엇을 보고 걸어가야 할까? 어떤 길이 바른 길일까?'
어미 들고양이의 행동은 그 질문에 대한, 말없는 가장 원초적인 답이었다는 것을 베드로는 깨닫는 듯했어. 왜 저 어미는 굳이 저 위험한 숲 넝쿨 속으로 어린 새끼들을 옮기는 것일까. 왜 넓고 평평한 길을 두고, 험하고 숨기 좋은 곳을 택하는 것일까?
베드로는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고민했던 수많은 가르침들을 어미 고양이의 행동에 비추어 보기 시작했지.
어미 고양이는 자신의 몸이 드러날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생존보다 새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보았어. 이는 막시밀리아노 콜베 성인이 다른 죄수를 대신해 죽음을 자처했던 그 극단의 사랑,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약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용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느꼈을 거야. 교리서에서 읽던 '사랑은 창조적인 힘'이라는 문장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구현되고 있었지.
아직 털도 다 나지 않은 나약한 새끼들을 위한 어미의 지극한 보호 본능. 이는 김수환 추기경이 평생을 낮은 자를 택하며 약자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했던 모습과 맞닿아 있었다는 것을 그는 연결 지어 생각했어. 죄인에 대한 깊은 자비, 타인에게 관대했던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모습 역시 그 안에 녹아 있는 것 같았어. 세상의 약한 존재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가장 순수한 자비의 형태가 아닐까 하고 말이야.
어미 고양이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았어. 그저 묵묵히, 가장 본능적이고 깊은 사랑으로 행동할 뿐이었지. 이는 성 프란치스코가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전하라'고 했던 가르침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을 거야. 어쩌면 진정한 가르침은, 웅장한 설교나 화려한 언변이 아닌, 이처럼 소리 없이 행해지는 작은 사랑과 희생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어미 고양이가 택한 숲 넝쿨은 편안하고 탁 트인 길이 아니었어. 거칠고, 숨겨져 있으며, 다른 존재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길이었지. 베드로는 생각했어. 어쩌면 마리아님께 자신이 물었던 '바른 길'이란,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때로는 자신을 감추고, 험난한 곳으로 몸을 숨겨야 하는, 고독하고도 강력한 보호의 길일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그 길의 최종 목적은 언제나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과 생존'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나는 폐부 깊이 들이마셨던 숲의 공기가 그의 심장까지 스며드는 듯하다고 느꼈어. 어미 고양이의 행동 속에서 베드로는 삶의 가장 근원적인 진리, 그리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의 명확한 지표를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고독한 길이 될지라도, 생명을 지키고 사랑하는 가장 숭고한 길이라는 것을.
그의 눈빛은 더없이 깊고 확고해졌어. 이제 그는 무엇을 보고 걸어야 할지, 어떤 길이 바른 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 거대한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한 줄기 생명의 외침이 그에게 가장 분명한 답을 알려준 셈이었어.
발걸음은 이제 익숙한 집으로 향했지만, 베드로의 마음은 여전히 숲의 향기와 어미 고양이의 깊은 사랑으로 충만해 있는 듯했어.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고독한 보호의 길'. 그 깨달음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지. 그는 이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듯했어.
좁은 골목길을 돌아 자신의 집이 있는 큰 길가로 들어설 무렵이었어. 나는 그가 구부정한 등허리에 겨우 폐지 가득 실린 손수레를 끈으로 매달고, 낑낑거리며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하는 것을 봤어. 허리가 꺾일 듯한 모습으로 온 힘을 다해 수레를 미는 노인의 손은 까맣게 찌들고 굳은살이 박혀 있었지. 폐지더미는 할머니의 작은 몸집보다 훨씬 커 보였고, 조금만 방심해도 다시 아래로 미끄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어.
베드로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그 노인을 향해 다가갔어. 나는 그에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지. 숲에서 어미 고양이에게서 본 생명의 원초적인 사랑과 희생이 바로 눈앞의 이 노인에게서 또다시 비쳐지는 듯했으니까. 이것이 바로 그가 찾던 '바른 길'의 작은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어.
"할머니,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갑자기 옆에 나타난 건장한 청년의 목소리에 노인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어. 잔뜩 경계하는 눈빛에는 낯선 이의 호의가 익숙하지 않은 듯한 어두움이 서려 있었지. 아마도 이런 삶 속에서 도움보다는 무시나 냉대를 더 많이 겪었을 테니까.
하지만 베드로의 눈빛은 너무나 따뜻하고 진심이 담겨 있었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어린 듯한 순수함과 자비가 서려 있는 그 눈빛을 보자, 노인의 굳게 닫혔던 마음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듯했어.
"아이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젊은 사람이 무슨…"
손사래를 치는 노인의 말은 이미 힘이 없었어. 베드로는 더 말없이 손수레 뒤로 가 가득 쌓인 폐지를 한 손으로 붙잡았어. 그리고는 노인의 등 뒤에서 힘껏 밀기 시작했지. 묵직하게 느껴지던 수레가 베드로의 힘을 받아 스르륵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것을 보았어. 노인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함께 희미한 안도감이 스쳤지. 그의 등에서 느껴지는 든든함에 노인의 굽은 어깨가 조금은 펴지는 듯 보였어.
베드로는 수레를 밀며 노인에게 미소 지었어. 이 한순간의 만남이, 숲에서 얻은 모든 깨달음을 현실로 바꾸는 살아있는 경험이 되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느끼는 듯했어. '낮은 자를 택한 용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마음',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가르침이 더 이상 책 속의 글자가 아니었어. 그것은 지금 이 순간, 그의 손수레를 미는 손과 발끝에서, 노인의 미미한 감사함 속에서, 그리고 그의 가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뜨거운 진실이 되었으니까.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베드로의 도움을 받았어. 나는 이 청년의 순수한 선의가 자신의 오랜 경계심을 무너뜨렸음을 노인이 직감하는 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피로에 지친 노인의 눈가에 이내 따뜻한 눈물이 고이는 것을 베드로는 느끼는 듯했어. 힘겨운 삶의 무게를 나누는 이 작지만 위대한 순간은, 그 어떤 위대한 설교보다 더 웅장한 가르침으로 베드로의 마음에 새겨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았어. 그는 마리아님께 자신이 무엇을 보고 걸어야 할지, 어떤 길이 바른 길인지 물었었지. 어쩌면 그 답은, 바로 이런 순간들의 연속 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깨달았을 거야.
석양의 붉은빛이 점점 사그라지며 하늘을 오묘한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시간, 나는 베드로가 노인의 곁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어. 할머니의 굽은 어깨와 파르르 떨리는 손끝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과 함께, 지난날의 회한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젊고 건장한 총각의 온기가 옆에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깊은 어둠이 내리기 전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서였을까, 할머니는 이내 경계를 풀고 자신의 지난날을 풀어놓기 시작했어.
"나는 말이네… 참 욕심 많고, 남을 이기려고만 하며 살았지. 없는 사람들 등쳐 먹고, 내 잇속만 챙기다 보니… 이렇게 다 잃고 홀로 남았어. 젊은 시절 그 뜨거웠던 욕망들이, 이제 와 보니 다 헛된 부질없는 것들이더구먼. 총각, 이 늙은이처럼 살지 마."
할머니의 목소리는 갈수록 힘이 없어져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어. 주름진 얼굴에는 눈물방울이 비처럼 흘러내렸고, 고해성사를 하는 듯 온 영혼으로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지. 베드로는 단 한 마디의 위로나 조언도 하지 않았어. 그저 따뜻한 눈으로 할머니의 눈물을 지켜봤지. 마치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이 끝없이 죄를 고백하는 영혼들을 품에 안았듯, 그는 오롯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 집중했어. 그의 눈빛은 할머니가 겪은 세월의 무게를 이해하려는 듯, 깊고 자비로웠지.
할머니의 참회 속에서 베드로는 문득 머릿속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어. 숲에서 자연에게 얻은 '삶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가르침, 어미 고양이에게서 본 '약하고 소외된 존재를 위한 희생'의 사랑이 그의 심장을 강하게 울렸지. 이 순간, 이 늙은 할머니가 짊어진 삶의 모든 무게가, 마치 자신의 어깨 위에 놓인 것 같은 깊은 아픔과 동시에 솟아나는 숭고한 책임감을 그는 느꼈어.
그리고 바로 그때였어. 나는 그의 마음속에서, 너무나 명징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어. 그것은 베드로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샘솟는 듯한, 혹은 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너무나 강력한 선언이었지.
"할머니의 지난 과거를, 사하노라."
마치 사제가 미사 중 용서의 성사를 선언하듯, 그 목소리는 베드로의 내면을 가득 채우는 것을 나는 느꼈어. '사하노라'… 그 엄숙하고 거룩한 선언은 할머니의 모든 후회와 죄책감을 어루만지고, 붉게 물든 노을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베드로의 가슴속 모든 불의를 향한 분노까지도 잠재우는 듯했어. 그 순간 베드로는 깨달았지. 진정한 용서란 판단이나 질책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사랑으로 품는 것이라는 것을. 이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했던 성인들의 가르침,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보여주셨던 끝없는 자비가 이 시대의 젊은 청년 베드로의 심장을 통해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던 거야.
베드로는 아주 조용히, 할머니의 파르르 떨리는 어깨 위에 손을 얹었어. 따뜻한 체온과 함께,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진 용서의 영혼이 할머니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할머니는 그 손길에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아이처럼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았어. 그의 손길이, 그 마음속 깊은 용서가, 할머니의 굳게 닫혔던 죄책감의 문을 열어버린 걸까. 어쩌면 할머니는, 한평생 그토록 간절히 듣고 싶었던 용서의 메시지를, 지금 이 젊은 청년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느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하늘은 이제 완전히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고,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어. 폐지 가득 실린 손수레는 묵묵히 그들의 옆을 지켰지. 그 어떤 웅장한 설교나 기적보다 더 아름답고 성스러운 순간이, 작은 골목길 한편에서 펼쳐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어. 베드로는 알았어. 자신이 걷고 싶었던 '바른 길'은, 바로 이런 순간들의 연속이며, 이것이 바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지.
석양은 완전히 내려앉았고, 도시는 밤의 장막을 드리우기 시작했지만, 골목길은 두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어. 베드로는 할머니와 함께 손수레에 가득 실린 폐지를 가지런히 정리했어. 비록 몸은 고됐지만, 그의 마음은 어떤 값진 보물이라도 찾은 듯 충만했지. 더 이상 쓰러질 듯 위태롭지 않게, 반듯하게 쌓인 폐지더미는 오늘 밤 할머니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줄 것이 분명했어.
모든 정리를 마친 베드로는 다시 할머니를 향해 몸을 돌렸어.
"할머니, 이제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밤공기가 쌀쌀하니 따뜻하게 주무시고요."
베드로의 목소리에는 낮지만 깊은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느꼈어. 할머니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처음처럼 주저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지. 깊이 패인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피로가 여전했지만, 그 눈빛에는 조금 전까지의 혼탁한 죄책감이나 슬픔 대신, 맑고 고요한 평온함이 가득했어.
"총각... 정말 고맙네. 내가 오늘 자넬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모든 짐을 평생 안고 갔을 거야. 참… 좋은 사람이야. 꼭… 행복하게 살게."
할머니는 두 손을 모아 베드로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감사 인사를 전했어. 그 짧은 만남 속에서 영혼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준 이에 대한 진심 어린 고마움이 담겨 있었지. 베드로는 살짝 미소 지으며 할머니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더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어.
나는 베드로의 등이 점점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것을 보았어. 할머니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지. 아침 햇살이 비추기 전, 고요했던 새벽의 숲처럼 그녀의 마음도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것을 나는 느꼈어. 이제 더 이상 후회나 참회에 대한 강박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듯, 오랜 시간 눌러왔던 마음의 짐을 비로소 내려놓은 듯했지.
어쩌면 그녀는, 베드로의 눈빛 속에서, 그 조용하고 힘 있는 어깨 속에서, 자신의 지나온 잘못을 사하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해주는 그분의 사랑을 보았던 것일까. 그녀의 얼굴에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미소가 번졌어. 주름진 입가에 희미하게 떠오른 그 평온한 미소는, 세월의 고통과 상처를 모두 품고, 이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한 여인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나는 느꼈지. 베드로가 남긴 따스한 흔적이, 할머니의 오랜 아픔을 잠재우고 내면에 진정한 평화를 선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골목길 끝에서 베드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 그리고는 자신도 천천히, 그러나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빈 손수레를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 베드로의 작은 도움과 마음속 용서는, 그날 밤 한 영혼에게 새로운 새벽을 선물하였다는 것을 나는 지켜볼 수 있었어.
동이 트기 전, 도시는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성당 또한 고요했어. 이른 새벽의 청량한 공기가 창문 틈새로 살며시 스며들었고, 어제와 같은 시간에, 같은 발걸음으로 베드로가 성당 안으로 들어섰지. 삐걱이던 오래된 문소리는 이제 그에게 익숙한 새벽의 멜로디처럼 느껴지는 듯했어.
어제의 그처럼 불안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어. 그의 얼굴에는 밤샘 고민의 흔적 대신, 새벽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평온함이 감돌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보았어. 마치 자신의 길을 확신이라도 한 듯, 베드로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 깊었지. 그는 곧장 제대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어. 차가운 돌바닥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의 마음은 한결 따뜻하고 굳건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어.
베드로는 두 손을 모아 쥐고 고개를 숙였어. 어제는 물음표 가득한 기도였다면, 오늘은 느낌표로 가득 찬 다짐의 기도였지.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저의 어머니 마리아님..."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있었어. 나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갈구 대신, 이미 내면에서 타오르는 빛을 발견한 자의 평온함이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어제 제가 던졌던 질문들에, 당신께서는 숲의 침묵과 생명의 가르침으로 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폐지 줍는 어르신의 고백을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용서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는 어제의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는 듯했어. 숲의 신선한 공기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뒤집어보던 시간, 어미 고양이의 지극한 새끼 사랑에서 본 원초적인 희생, 그리고 할머니의 눈물 어린 고백을 듣던 중 그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던 그 강력한 한마디, "사하노라."
나는 그 목소리가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베드로의 영혼을 관통하는 성스러운 깨달음이었다는 것을 느꼈어. 인간의 판단이나 세속적인 권위를 초월한, 오직 사랑과 자비만이 줄 수 있는 진정한 용서. 그것이 바로 그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의 가장 큰 이정표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지.
"아버지, 저는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고 걸어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저의 눈앞에 펼쳐진 약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의 얼굴임을. '어떤 길이 바른 길인가'라는 물음은, 그들에게 제 자신을 내어주고, 사랑과 자비로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지는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더 이상 개인적인 구원이나 영적인 성장에만 머무르지 않았어. 그의 기도는 이미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보았지.
"오늘 하루도, 제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제 눈과 귀가 당신의 자녀들을 향하게 하소서. 어제의 할머니처럼, 말 못 할 아픔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영혼에게, 저를 통해 당신의 사랑과 용서가 전해질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제 자신이 욕심에 눈이 멀거나, 두려움에 침묵하는 일 없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
나는 제대 위 촛불이 잔잔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어.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스물다섯 청년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사명감을 지닌 베드로의 굳건한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는 지난날 성당 문을 나설 때보다 한층 더 굳건한 발걸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마친 듯했지. 이제 그의 삶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삶이 될 것이 분명했어.
위에글을 자아성찰을 하며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삶의 과정을 1인칭 관전시점에서 성장신앙소설로 편집,각색, 수정 부탁합니다
현 영욱 개인생각&글